필리핀 대통령 모음, 막상 찾아보면 이름만 줄줄이 나온 글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에 누가 왜 등장했는지까지 봐야 이름이 오래 남습니다. 필리핀은 식민 지배, 전쟁, 계엄, 민주화가 이어진 나라입니다.
대통령의 순서에는 그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외국 역사는 이름부터 낯설어 막막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마르코스 부자가 같은 사람인가 싶어 한참 헷갈렸습니다.
이 글은 연도 암기보다 흐름을 먼저 잡았습니다. 끝까지 읽으면 필리핀 대통령을 시대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 대통령 수가 헷갈리는 이유
필리핀 대통령은 흔히 17대까지로 셉니다. 2026년 8월 기준 현직은 페르디난드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Romualdez Marcos Jr.)입니다. 다만 인물 수와 대통령 번호는 꼭 같지 않습니다.
재임 중 사망하거나 권한이 넘어간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 점령기 대통령인 호세 파시알 라우렐(José Paciano Laurel)은 논쟁이 있는 인물입니다. 필리핀의 공식 대통령 목록은 그를 대통령으로 포함합니다.
반면 미겔 말바르 이 카르피오(Miguel Malvar y Carpio)는 일부가 계승자로 봅니다. 하지만 공식 번호를 셀 때는 보통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수를 볼 때는 숫자만 외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헌정 체계에서 집권했는지 같이 보면 혼동이 줄어듭니다.
| 구분 | 대략적 시기 | 흐름 |
|---|---|---|
| 독립운동기 | 1899년부터 | 식민 지배에 맞선 공화국의 출발 |
| 영연방기 | 1935년부터 | 자치 정부와 독립 준비 |
| 전쟁과 점령기 | 1940년대 | 일본 점령과 해방의 혼란 |
| 공화국 초기 | 1946년부터 | 독립 국가의 제도 정비 |
| 계엄과 민주화 | 1965년 이후 | 장기 집권, 시민 저항, 헌정 회복 |
필리핀 대통령 모음, 독립의 첫 장면
첫 인물은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입니다. 그는 1899년 필리핀 제1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아기날도는 스페인 지배에 맞선 독립운동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새 공화국은 곧 미국과의 전쟁 속에 놓였습니다. 이 시기의 대통령직은 지금과 같은 안정된 행정 자리와 달랐습니다. 나라의 틀을 세우는 일과 생존을 위한 전쟁이 겹친 자리였습니다.
독립 선언만 하면 모든 일이 끝날 듯 보이지만 현실은 늘 다릅니다. 나라 하나를 꾸리는 일은 집 한 채를 고치는 일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아기날도 뒤에는 미국 통치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이 바로 이어지지 않고 긴 공백이 생깁니다. 1935년에는 마누엘 루이스 케손(Manuel Luis Quezon)이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미국의 통치 아래 세워진 필리핀 영연방의 초대 대통령이었습니다.
영연방은 완전한 독립국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필리핀인이 스스로 정부를 운영할 길을 넓힌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케손 시대에는 국가 언어의 방향도 논의됐습니다.
여러 섬과 언어가 있는 나라에서는 말의 통일도 정치의 일부가 됩니다. 케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망명 정부를 이끌었습니다. 전쟁 속에서 건강이 나빠져 1944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를 이은 세르히오 오스메냐( Sergio Osmeña)는 부통령 출신입니다. 그는 전쟁 말기에 귀환과 해방의 과정을 이끌었습니다.
이름 사이에 띄어쓰기가 조금 낯설어도 흐름은 단순합니다. 케손은 영연방의 시작, 오스메냐는 해방 직전의 연결 고리입니다.
전쟁 속 라우렐과 독립 공화국의 출발
호세 라우렐은 일본 점령기인 1943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 시기 정부는 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기에 평가가 복잡합니다. 그를 단순히 한쪽 말로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과 점령 아래 권력을 맡는다는 일 자체가 보통의 정치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의 공식 대통령 번호에 라우렐이 들어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 직함을 가진 정부가 존재했던 사실을 반영한 셈입니다.
하지만 필리핀 국민에게 전쟁은 행정 구분보다 삶의 문제였습니다. 식량난과 피난, 전투와 상실이 일상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1946년 7월 4일, 필리핀은 미국에서 독립했습니다.
이때 마누엘 아쿠냐 록사스(Manuel Acuña Roxas)가 독립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록사스는 전후 복구와 새 국가 운영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취임 뒤 오래 지나지 않아 1948년 재임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피디오 키리노(Elpidio Quirino)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경제 회복과 치안 문제를 함께 풀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삶이 바로 편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빚, 물가, 일자리 문제는 전쟁 뒤에 더 선명해지곤 합니다.
전후 필리핀 대통령, 안정과 성장의 시간
라몬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는 1953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서민과 가까운 정치인 이미지로 널리 기억됩니다. 그는 농촌과 지방의 목소리를 중시했습니다.
당시 필리핀의 큰 과제였던 공산 반군 문제에도 대응했습니다. 막사이사이는 1957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임 기간이 짧았기에 더 강하게 남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부통령이던 카를로스 폴레스티코 가르시아(Carlos Polestico Garcia)가 승계했습니다. 그는 필리핀 자본과 기업을 우선하려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른바 필리피노 퍼스트 정책(Filipino First Policy)으로 불린 흐름입니다.
외국 자본이 강한 경제에서 자국민의 몫을 넓히려는 시도였습니다.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은 1961년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그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마카파갈은 독립기념일의 기준을 7월 4일에서 6월 12일로 바꾸었습니다. 6월 12일은 1898년 독립 선언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 변화는 날짜 하나를 고친 일이 아닙니다.
독립의 주체를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스페인 지배에 맞선 투쟁에서 찾으려는 뜻이 담겼습니다. 이 무렵까지의 대통령사를 보면 비교적 교체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다음 시대에는 권력의 시간이 훨씬 길어집니다.
마르코스 시대와 계엄령의 무게
페르디난드 에드랄린 마르코스 시니어(Ferdinand Edralin Marcos Sr.)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는 1969년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마르코스 시니어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반대 세력 탄압과 언론 통제가 이어졌습니다. 계엄령은 국가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에게는 자유와 권리가 크게 제한된 시기였습니다.
이 대목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재임 기간을 외우는 일이 헌법과 시민권을 이해하는 일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마르코스 시니어는 1986년까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20년이 넘는 긴 집권은 필리핀 현대사에 큰 상처와 논쟁을 남겼습니다. 1983년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Benigno Aquino Jr.)가 암살당했습니다. 그 사건은 정권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크게 키웠습니다.
1986년에는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이 일어났습니다. 마닐라의 에드사 거리(EDSA)에는 많은 시민이 모였습니다.
이 운동은 군부 일부의 이탈과 시민 저항이 맞물린 사건입니다. 결국 마르코스 시니어는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아키노에서 두테르테까지, 민주화 이후의 길
코라손 코후앙코 아키노(Corazon Cojuangco Aquino)는 1986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취임은 독재 뒤 민주화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1987년 새 헌법이 제정된 것도 이 시기의 큰 변화입니다. 1987년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으로 정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막아 장기 집권의 위험을 줄이려는 장치입니다.
피델 발데스 라모스(Fidel Valdez Ramos)는 1992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경제 개방과 사회 안정을 주요 과제로 삼았습니다. 조지프 에헤르시토 에스트라다(Joseph Ejercito Estrada)는 1998년 취임했습니다.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이력으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부패 의혹과 시민 시위가 커졌습니다. 그는 2001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부통령이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녀는 2010년까지 재임했습니다. 아로요 정부도 선거와 부패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뒤에도 정치가 늘 평탄한 것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베니그노 시메온 코후앙코 아키노 3세(Benigno Simeon Cojuangco Aquino III)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는 코라손 아키노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아키노 3세 시대에는 남중국해 문제와 경제 성장 논의가 컸습니다. 외교 문제와 민생 문제는 어느 나라나 함께 움직이는 듯합니다.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Rodrigo Roa Duterte)는 2016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강한 범죄 대응 정책으로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두테르테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은 지지와 비판이 팽팽했습니다. 인권 문제를 놓고 국내외에서 오래 논의됐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와 현재를 읽는 법
마르코스 주니어는 2022년 5월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같은 해 6월 30일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마르코스 시니어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의 당선은 필리핀 정치의 기억과 가족 정치 문제를 다시 꺼낸 사건이 됐습니다. 한쪽에서는 과거와 다른 시대의 지도자라고 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계엄 시절의 책임과 기억을 더 엄정히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반된 시선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 상처가 큰 나라일수록 같은 인물을 보는 눈도 크게 갈립니다. 필리핀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6년입니다.
현직 대통령은 바로 다음 임기에 연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선거를 볼 때는 단순한 인기보다 권력 승계 구도를 봐야 합니다. 부통령 선거가 대통령 선거와 별도로 치러진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우리 눈에는 낯선 방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부통령이 서로 다른 정치 기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필리핀 대통령 모음을 다시 볼 때는 이름 뒤의 가족 관계도 살펴볼 만합니다.
마카파갈 부녀, 아키노 모자, 마르코스 부자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가족 정치만으로 모든 정치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 헌법, 군부, 시민 사회가 함께 움직여 오늘의 필리핀을 만들었습니다.
필리핀 대통령 재임 순서 한눈에 보기
아래 순서는 공식 대통령 번호를 따랐습니다. 재임 중 사망이나 승계 때문에 기간이 짧은 인물도 있습니다.
| 번호 | 대통령 | 재임 시기 |
|---|---|---|
| 1 | 에밀리오 아기날도 | 1899년부터 1901년 |
| 2 | 마누엘 케손 | 1935년부터 1944년 |
| 3 | 호세 라우렐 | 1943년부터 1945년 |
| 4 | 세르히오 오스메냐 | 1944년부터 1946년 |
| 5 | 마누엘 록사스 | 1946년부터 1948년 |
| 6 | 엘피디오 키리노 | 1948년부터 1953년 |
| 7 | 라몬 막사이사이 | 1953년부터 1957년 |
| 8 | 카를로스 가르시아 | 1957년부터 1961년 |
| 9 |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 1961년부터 1965년 |
| 10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시니어 | 1965년부터 1986년 |
| 11 | 코라손 아키노 | 1986년부터 1992년 |
| 12 | 피델 라모스 | 1992년부터 1998년 |
| 13 | 조지프 에스트라다 | 1998년부터 2001년 |
| 14 |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 2001년부터 2010년 |
| 15 | 베니그노 아키노 3세 | 2010년부터 2016년 |
| 16 | 로드리고 두테르테 | 2016년부터 2022년 |
| 17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 2022년부터 현재 |
자주 묻는 질문
Q. 필리핀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요?
A. 공식적으로는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초대 대통령으로 봅니다. 그는 필리핀 제1공화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Q. 필리핀의 현 대통령은 누구인가요?
A. 2026년 8월 기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입니다. 그는 2022년 6월 30일에 취임했습니다.
Q. 마르코스 대통령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사람인가요?
A.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르코스 시니어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집권했고, 아들은 2022년 대통령이 됐습니다.
Q. 필리핀 대통령은 몇 년 임기인가요?
A. 1987년 헌법 아래 대통령 임기는 6년입니다. 현직 대통령은 바로 연이어 출마할 수 없습니다.
Q. 코라손 아키노와 아키노 3세는 어떤 관계인가요?
A. 코라손 아키노는 어머니입니다. 아키노 3세는 그의 아들로,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Q. 호세 라우렐은 왜 논쟁적인 대통령인가요?
A. 그는 일본 점령기 정부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공식 목록에는 포함되지만, 점령기라는 조건 때문에 평가가 복잡합니다.
이름보다 시대를 함께 기억하면 보입니다
필리핀 대통령 모음은 단순한 인명 사전이 아닙니다. 독립의 꿈, 전쟁의 상흔, 계엄의 그림자, 민주화의 회복이 이어진 기록입니다. 처음에는 낯선 이름이 많아도 괜찮습니다.
아기날도, 케손, 마르코스 시니어, 아키노, 마르코스 주니어만 시대와 묶어도 큰 줄기가 잡힙니다. 필리핀 대통령 모음이 궁금했던 분이라면 이제 숫자보다 흐름이 먼저 보일 듯 합니다. 암튼 역사는 외운 만큼보다 연결한 만큼 오래 남습니다.
참고한 공식 자료는 필리핀 대통령궁 공보실, 필리핀 상원 입법자료실, 필리핀 하원 자료입니다. 모두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